ESPQ [ESPQ] 2장 극미 투시력의 인식론적인 측면
작성일 16-08-11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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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우주나무 조회 7,283회 댓글 0건본문
Read: 765, Vote: 10, Date: 2002/08/03 10:15:00 , IP: 218.50.126.193
글 제 목 [ESPQ] 2장 극미 투시력의 인식론적인 측면
작 성 자 문성호
2 장
극미 투시력의 인식론적인 측면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이 우리의 질문방식에 대해서 드러내 보여주는 것, 그것이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단순히 묘사하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와 자연사이의 상호작용의 일부분이다.
- 베르너 하이젠베르그 -
이 장에서는 일반적인 마이크로 투시에 의한 관찰, 특히 애니 베산트와 찰스 리드비터의 그러한 관찰의 타당성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철학적인 이견에 대해서 논할 것이다.
베산트와 리드비터의 작업에 관한 가장 비판적인 관점은 그들의 관찰이 진실된 것이 아니라, 정교한 거짓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견을 가지고 있는 비평가들에게 다음의 질문들을 제기한다.
1. 동위원소의 개념이 생겨나기도 전에 베산트와 리드비터는 어떻게 하여 일부 원소의 M.P.A.들의 근소한 변종들의 존재를 생각해 낼 수 있었는가? 이 개념은 두 신지학자가 네온의 M.P.A.의 변종을 관찰한 것을 발표한지 약 6년후에 소디Soddy에 의해 과학에 도입되었다.1
2. 베산트와 리드비터는 원소의 원자량과 “수원자량number weight”간의 거의 정확한 일치를 찾았다고 주장하였다. "수원자량“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수원자량 = M.P.A. 내의 U.P.A. 의 갯수 / 18
(수소의 M.P.A.는 18개의 U.P.A.를 함유하고 있다. 따라서 그 수원자량은 1이다). 그들은 이런 일치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잘못) 생각하였다. 그러나 몇몇 원소의 경우에는 오차가 수개에 달하였는데, 만일 U.P.A.의 개수를 사실, 잘 일치하도록 선정되면 오차는 줄일 수 있었다. 그러면, 왜 그들은 이미 알려진 원자량과 그들이 산출한 수원자량을 정확히 일치하도록 이들 숫자들을 꾸며내지 않았는가? 만약 원자를 묘사할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이 정말로 사기행위였다면, 숫자들의 일치는 보다 더 인상적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3. 만일 이 신지학자들이 그들의 출판물을 이미 알려져 있던 과학적인 연구결과로부터 유도한 것이라면, 왜 그들은 많은 분자들을 이미 알려진 구조와 크게 차이가 나도록 묘사하였겠는가? 예를 들면, 왜 베산트와 리드비터는 벤젠분자의 형태를 6각형이 - 그들에게 뿐 아니라 그 당시 화학자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 - 아니라 8면체로2 묘사하였는가?
4. 어떻게 아마추어적인 물리지식만 가지고 있던 두 사람이 회전의 라모 세차운동(Larmor precession)을 생생히 그리는, 자기장속의 하전입자들 - 입자 고유의 스핀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그러나 전자와 광자의 스핀의 실험적 발견보다 앞서 출판되었던 서술들, 그런 입자 행동의 묘사를 창안할 수 있었는가? 예를 들면, “수소 삼각형”(이 책의 뒷장에서 양성자와 동일시되는)의 세차운동은 우렌벡Uhlenbeck과 구드스미트Goudsmit가 전자는 고유의 각운동량을 가지고 있다고 제안하기 전인, 그리고 양성자의 스핀이 실험적으로 관찰되기 전인 1924년에 OH 그룹을 관찰하는 중에 묘사되었다. 또한 어떻게 관찰자들은, 외부의, 정지 전기장에 평행하게, 다양한 U.P.A.의 스핀축이 정렬하는 것을 관찰했다고 꾸며낼 수 있겠는가? 그들이 회전하는 자기부하가 전기 쌍극자 모멘트(자기부하의 개념은 그들의 출판물에서 뚜렷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고는 거의 생각할 수 없다. 또, 그들이 U.P.A.를 자기단극이라고 결론내렸으리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전기장에서의 스핀의 정렬에 대한 그들의 관찰은 “오컬트 화학” 첫 번째 판에서 나타나는데, 자기 단극은 1933년에 디랙에 의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논의되었기 때문이다.4
5. 이 책은 최신 소립자물리의 사실과 아이디어와, 1895년이라는 오래 전에 출판된 마이크로 투시 관찰사이의 정확한 일치에 대한 수 많은 예들을 제시한다. 만일, 후자의 것이 단지 꾸며낸 것이라면, 이들 모든 주목할만한 유사성들은 단지 우연에 의한 것인데, 그것은 신빙성이 결여된 것이다.
이런 논증들(특히 마지막의 것)은 조작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할 만한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마이크로 투시는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로, “주관적인” 관점인데, 마이크로 투시의 상들을 물리학에서 다루는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라 심리학에서 연구하는 주관적인, 꿈의 내부세계, 공상, 환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것들은 전체 세계의 어떤 물체와도(또는, 특별히 관찰자가 조사하는 물체와) 아무런 인과적인 관계가 없는, 단지 관찰자의 뇌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 상들이 환상이라고 가정하고, 따라서, 심리학자들만이 흥미가 있고 물리학자들에게는 흥미를 끌지 못한다고 해보자. 베산트와 리드비터의 경우에는 38년이 넘게 그러한 상태를 계속 고집해 왔으므로, 그들은 원래 병적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유형의 상들이 두 사람 모두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하나는 언제나 다른 하나와 일치되었다. 더욱이, 이 설명은 이런 싯디(초능력)뒤에 있는 요가 전통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지 못하다. 만약 마이크로 투시에 의한 영상이 물리적인 세계속의 대상의 의사시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떠오른다: 스스로 유도되었고 조사되는 물질의 견본과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환상이, 어떻게 해서 그것을 가지고 작업하는 실험자에 의해 조종되었는가? 보고서 상에는 투시자가 경험하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견본을 통하여 전류를 흘려보내거나 교류를 직류로 전환시키는 다른 사람에 의해 교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5 어떻게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환상이 실험자에 의해서 변화할 수 있는가 - 더욱이, 정말 그것이 실험자가 도입한 변화된 실험상태에 대응하는 실제의 대상에 예상되는 바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변화한다면? 예를 들어, 마이크로 투시의 이미지들이 융의 집단무의식의 전형적인 상징이라고 가정하자. 어떻게 이런 변성된 의식상태에 속하는 별스러운 그러한 심리적인 실체가 전류를 켜고 끄는데 영향을 받는단 말인가. 마이크로 투사 관찰자들은 U.P.A.와 다른 입자들이 전기장과 자기장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하, 스핀, 전기 쌍극자 모멘트와 같은 특성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만약 이들 가정된 상징이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입자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들은 외부의 장들에 의해 그와 같이 행동하도록 할 수 있단 말인가? 1895년과 1933년 사이에 베산트와 리드비터가 알 수 있었던 과학지식은 그들이 그런 역동적인 행동을 예견할 수 있을 정도의 것이 못되었다.
마이크로 투시를 해석하는 두 번째 방식 - “실재론자”의 관점 - 은 마이크로 투시가 굉장한 확대의 결과 보여진 객관적인 현상을 기록한 것이며 모든 이미지들은 실험물체속의 관찰대상과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책의 기본 명제에 따르면, 실재론자의 해석이 옳은 것이다. 어떻게 확대가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관계로, 이미지들이 극미의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한 것인지, 또는 왜곡되게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논쟁이 있을 수 있다. 마이크로 투시의 의한 영상과 입자물리학의 모델사이의 명백한 유사성을 보임으로서 마이크로 투시 비전의 본질적인 정확성에 관해서 독자들이 품을 수 있는 어떤 의문도 제거되기를 희망한다.
베산트와 리드비터의 작업이 조작의 소산이라는 비평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방어할 필요가 없다. “주관적인” 관점과 관련된 문제들은 그 주장을 지탱하기 어렵게 한다. 왜 객관적인 실제들과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환상들이 입자물리학의 현대이론들과 인상적인 유사점들을 지니고 있는지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가 없다.
마이크로 투시에 대한 다음과 같은 해석을 제안한다: 마이크로 투시 비전은 투시자들의 능동적인 관찰기간 동안에 시공간에 실재하는 극미한 물리적인 대상을 초감각적 지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들 대상이 관찰전이나, 관찰하는 동안, 그리고 관찰후에 똑같은 상태에 있다고 가정해서는 안된다. 마이크로 투시가 본래 섭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허용해야 한다. 양자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법으로서, 마이크로 투시는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원리에 의해 물리적 지식을 얻는데 제한을 받는다. 비록 초감각적 지각의 연류가 명쾌하게 가정되고 있지만, 이 가정은 편의를 위한 것이지 부득이해서 가정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심령현상psychic"이라고 알려진 인간경험의 모든 형태는 실은 과학이 연구할 수 있는 작용으로 환산할 수 있는 물리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 이런 관점이 마이크로 투시의 경험을 초감각적 지각의 한 형태로 간주함에 의해서 단언되거나 부인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는 무엇이 잘 알려진 사실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원자는 보통 인간의 시력을 가지고 보기에는 너무도 작다.
만약 위의 가설이 사실이고 마이크로 투시가 전자현미경으로 관찰불가능한 대상에 대한 타당한 지식들을 제공하고 있다면, 그 능력은 과학적인 이해에 어려운 문제를 제시한다. 물론, 이 점에 있어서는 텔레파시나 예지와 같은 다른 형태의 초감각적 지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현재까지도 이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없다. 그러나, 마이크로 투시 이미지가 시공간속에 있는 실제의 대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그들이 어떻게 의식의 변성상태에서 떠오르게 되었는지 하는 문제와 분리할 수 없다는 논쟁이 있을 수 있다. 후자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없다면, 그 이론은 전자에 대해서 대답할 수 없다. 그러나 단지 이 이유로 이론이나, 또는 인과관계를 언급하지 못하는 이들 이미지의 개념상의 지도conceptual map를 거부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뇌의 뉴런기관이 어떻게 시각 신경섬유속의 임펄스 신호를 전체적인 영상으로 재구성하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뇌의 어느 부분의 뉴런이 영상에, 심지어 망막의 이미지의 한 작은 부분에 특별히 반응하는지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사람이 보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실체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 시각경험을 이끌어 내는 두뇌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 투시에 대한 어떤 이론도 이 책에서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이 할 일은 마이크로 투시 관찰자들이 경험한 세계의 이상한 생김새와 낯선 지형을 현대 소립자 물리학의 용어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마이크로 투시가 극미한 대상의 구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가정은 관찰상의 오류가 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관찰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영상의 범위내의 복잡한 이미지들을 지속적인 유지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 격렬한 정신활동이다. 이들 이미지들의 양적인 묘사에 그의 지성을 동시에 사용하다보면 실수를 저지를수도 있다. 예를 들면, “빛의 점들”로 보이는 입자들의 수를 잘못 셀 수도 있다. 불완전한 측정기구로 인한 오류(규칙적이거나 지속적이며 보정할 수 있는 오류)와 다르게, 사람의 관찰에 의한 오류는 무작위로 일어나며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오류가 일어나기 쉬운 관찰에 의해 얻어진 자료에 대한 이론을 적용할 때에 모든 사례에 대해 정확히 일치하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사실, 모든 개개의 자료와의 일치를 예언하는 이론은 자료와 잘 일치하지 않는 이론과 마찬가지로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체적으로 자료가 이론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일치하는가이다. 다시 말하면, 이론을 뒷받침하는 자료의 오류가 우연히 발생되는 개연성이 대단히 적어서, 그러한 개연성을 합리적으로 도외시할 수 있는가, 하는데 있다. 이 문제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M.P.A.의 이론을 통계학상의 의미를 갖는 시험으로 4장에서 깨끗이 청산하였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로 투시 현상을 확인하는 작업에서 다음의 문제에 신중을 요할 것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관찰자들은 그가 본 복잡하고 기괴한 이미지들의 인상을 매우 불충분하게 전달할 수밖에 없는 비전문적이고 일상적인 언어로 묘사해야만 했다. 관찰자에 의한 직접적인 보고와, 결과적으로 그릇되거나 오도할 수 있는 독단적인 해석들이 되게하는 평가들을 구별하여야 한다. 화학원소들의 조사에 관한 베산트와 리드비터의 보고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빅토리아시대의 과학의 대중적인 개념에 의해 채색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마음속에 이들 양쪽 모두를 참작하여 그들의 증언을 검토하여야 한다.
참고문헌
1. “메타네온 Meta Neon" The Theosophist, vol. 30, part 1, December 1908.
2. The Theosophist, vol. 45, April 1924.
3. 같은 책
4. P. A. M. Dirac, Proc. Roy. Soc. (런던), A133, 60 (1931)
5. 지오프리 허드슨Geoffrey Hodson과 리네스Dr. D. D. Lyness 에 의한 관찰 (1956-59)
(미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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